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네, 와트슨 군!




✮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의 모험』에
나오는 홈즈의 말이다.
와트슨은, 베이커 거리에 있는 홈즈의 방으로
오르는 계단은 몇 계단이냐는
질문을 받고 대답을 못한다.

그때 홈즈는 "자네는 다만 눈으로 볼 뿐이지
관찰하려고는 하지 않는다."고 하며,
사물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생각하라. 즉, 관찰하는 습관을 익히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관찰도 전체적인 인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세밀한 점에 주의를
집중시키라고 충고한다.

단,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이 있는 자는
간단히 설명되는 것을 너무 복잡하게 억측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주의하라고 자계(自戒)삼아 말한다.
게다가 홈즈는 "처음부터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말고,
백지 상태에서 주의깊게 살펴보면, 진상을 알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하고, 선입관이나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관찰의 눈을 빗나가게 하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 직장 일의 개선 궁리나 각종의 연구 활동에
즈음해서의 훈시에서 인용할 수 있는 말이다.
홈즈도 맣하듯이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일을 개선하는 아이디어도
평소 때부터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을 익히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반듯하지 않은 자는 법의(法衣)를 입을 자격이 없다.






✮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지 않고 법의를 
입으려고 원하는 사람은
아직 마음이 제어되지 않았으므로 그 법의를 입을
자격이 없다"(『법구경』)
마음이 반듯하지 않은 자는 법의(法衣)를 입을 자격이 없다.

고대 인도에서는 출가한 수행자는 일반인과 구별해서
황갈색의 가사(袈裟)를 입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수행승을 크게 신용하고 가사를 입은
외형에 대해 신용과 존경심을 가졌다.
그 마음도 당연히 그것에 적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반듯하지 않은 자는 법의(法衣)를 입을 자격이 없다.

즉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욕망이나 본능에 의해
아직도 마음의 더러움을 다 뱉아 내지 못해
내면적으로 번민이 있고 마음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수행승은 사실상
사가를 입을 자격이 없다.
내실이 따르지 않고 외형만 반듯하면 무슨
값어치가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마음이 반듯하지 않은 자는 법의(法衣)를 입을 자격이 없다.


✰ 조직에서 불행한 일은 능력이 모자라는 자가
관리직을 차지하는 일이다.
부하보다 모자라는 상사, 그나마 자기는 부하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이것이 번민의 씨앗이다.
실제로 "나는 부하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상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관리직이란 옷을 입는 자격은 
자신도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보다 뛰어난 부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줄 아는 데에 있다.



마음이 바르면 올바른 공이 나온다.





★ 일류 골퍼의 말에는 매우 멋진 것이 많은데,
미국의 바이론넬슨의 이 한마디도 정곡을 찌른 말이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달인의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바르면 올바른 공이 나온다.

마음을 바르게 가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누구나 다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규칙에 다소 
저촉되더라도 이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
같은 일을 가끔 보게 된다.
마음이 바르면 올바른 공이 나온다.

그렇지만 엣부터 "약은 일단(一旦)의) 일이다."라고 
일컬어지며, 부정을 한 자가 오랫 동안 번영한 예는 없다.
따라서 무엇을 하더라도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우리의
삶에서 올바른 공을 잇따라 계속 칠 수 있도록
유념해야만 한다.

마음이 바르면 올바른 공이 나온다.


☆ 흔히 다른 회사와의 경쟁에 이기기 위해 기업 스파이 사건이나
뇌물 사건 등을 일으키는 곳이 있는데 이러한 부정은
절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마음이 바르면 올바른 공이 나온다"는
말을 믿고 성심 성의껏 일에 임하여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부하들에게 함부로 기합을 넣지만 말고 때로는 
이러한 말을 써서 독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시면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 몽고의 속담
세계에는 술에 얽힌 속담이 많다.
이것도 그 중 하나로 "술이라는건 과음하면 몸을 망치고
자칫하면 죽음까지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시지 않아도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니, 죽는 것이
싫다고 해서 술을 마다할 것까지는 없다."는
그런 뜻이다.
마시면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말하자면 애주가가 정색하여 한 말인데,
아뭏든 술에 얽힌 속담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투의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술이 인간의 생활에 옛날부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구도 있다.
"3년간 술을 마셔 보라. 그렇게 되면 돈은 모두 없어진다.
마시면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3년간 술을 마시지 않고 있어 보라.
그래도 돈은 없어진다"(중국),
"처음의 한 잔은 건강을 위해,
두 잔에는 기쁨을 위해, 세 잔째는 치욕을 위해,
네 잔째는 광희를 위해."(그리스)라고 하는 식이다.
그렇지만 정색하는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주가들은 건강이나 낭비를 걱정하면서 
계속 마셔대고 있으니, 애주가란 귀여운 데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시면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 술의 권장을 드러내놓고 할 수는 없지만
파티나 주석에서의 가벼운 연설에는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애주가가 모여 있는 곳에서는 
환영을 받을 만한 말이기도 하다.

만족한 고객은 일곱 명의 손님을 데려다 준다.




✮ 미국의 외판원 지침서에 원전이 있으며, 
판매 관계자 사이에서 옛날부터 전해진 격언으로 
에프터 서비스의 중요성을 나타낸 말이다.

만족한 고객은 일곱 명의 손님을 데려다 준다.



판매라는 것은 상품을 판매하면 
그것으로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그 상품에 만족을 하게 되고서야 비로소 판매는
완결이 된다. 그 만족을 하게끔 하는 기능이 
에프터 서비스이고 만족한 손님은 소문이나
소재에 의해 새로운 손님을 데려다 준다.
손님이 손님을 부른다는 것은
이것을 뜻한다.

만족한 고객은 일곱 명의 손님을 데려다 준다.


현재는 어떠한가?
매상(賣上) 지상주의의 회사가 많아진 것은 아닐까?
영업 사원이나 세일즈맨도 근무 기준량에
쫒겨서 오늘 하루의 매상에만 신경을 쓰고
손님의 만족이란 것은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제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현대에서는
손님이 구입한 뒤의 만족까지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손님이 손님을 불러 주는 식의
소비자 서비스의 제도를 만들게 되면,
그쪽이 장래적으로는 매상을 증가시키는 것에
이어지는 길이 될 것이다.
흔히 "에프터 서비스란 비포어(before) 서비스이다."라고
하듯이 현재의 서비스는 미지의 손님에 대한 
비포어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만족한 고객은 일곱 명의 손님을 데려다 준다.


✰ 에프터 서비스의 중요성이나 판매의 
마음가짐을 주제로 하는 경우 이외에도, 
예를 들어 인간끼리의 교제에 있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만족하게끔 하는 행동을 하면 
잇따라 인간 관계의 고리가 펼쳐진다는 식으로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돼지가 되어서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서 슬퍼하겠다.




✯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존 스튜어트 밀(1806~1873)도 "나는 만족해하는
돼지가 되지보다는,만족하지 않는 인간이고자 한다."고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돼지가 되어서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서 슬퍼하겠다.

신약 성서에도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지 말라."고
써 있듯이 옛날부터 돼지는 먹는 것만을 탐하며
일의 도리를 모르는 상징으로 삼아왔다.
이것은 돼지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선언이다.
관념론 철학의 창시자로 일컫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거리에서 청년들과 지와 덕에 관해서
줄곧 문답을 나누다가, 70세를 넘어서 신에 대한 불경,
청년을 해틴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아 옥리(獄吏)가
준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돼지가 되어서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서 슬퍼하겠다.

돼지가 되어서 안온하게 사는 것보다 인간으로서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갈구하며 고뇌하고,
"너 자신을 알라"의 격언에 따라
자아를 계속 추구한 그 생애를 단적으로 가리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돼지가 되어서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서 슬퍼하겠다.


✰ 어쩌면 이 구절은 요즘의 세태하고는 거리가 먼 감이
없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없다. 있는 것은 여읜 돼지 뿐이다."라고
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독서는 풍성한 사람을, 담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쓰는 일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 F.베이컨의 말이다.
한정된 친근한 범위의 사람으로부터 직접 얘기를 들을 경우와
달라, 독서는 역사적인 시간,지리적인 장소 등을 초월해서 가지가지의
사람 예컨대 과거의 위대한 인물, 혹은 외국의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흡수할 수가 있다.
독서는 풍성한 사람을, 담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쓰는 일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배우려고 하는 의지만 있으면 상대를 택하지 않고
자기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다.
담화에 있어서는 그 상대는 한정되지 않으나 상대가 말하는 것에 대해 
즉각 반응하고 자기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에는 때때로 임기응변의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독서는 풍성한 사람을, 담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쓰는 일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얘기할 경우와 달라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의사
표시의 보조 수단은 없지만, 나중에 기록해서 남기는 것이기도하고, 또한
느긋하게 생각할 시간도 주어지게 되므로, 자연히 정확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의 훈련이 된다.
독서, 담화, 그리고 쓰는 일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는 전달 매체이다.
독서는 풍성한 사람을, 담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쓰는 일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 비니지스란 읽고 말하고 쓰는, 이 세 가지의 연속이다.
표제의 각각의 장점을 잘 이해한 뒤 기회를 포착해 자기를 훈련해야만
하는 것이다. 신입사원 교육의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도청 도설(道聽途說)




✮ 공자는 "앞의 길에서 어진 말이나 가르침을 들은 자가
다음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앞의 길에서 들었던 것을 
마치 자기 말[設]이기라도 한 것처럼 꾸며서 들려준다.
그런 사람은 모처럼의 덕을 자기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여,
남의 말을 경솔하게 도용하는 것은 군자가
 깊이 삼가야 할 일이라고 훈계했다.
도청 도설(道聽途說)

『논어』 양화편(陽貨篇)의 한 훈화로서, 쉽게 아는 체하고
남의 말의 도용을 마치 자기 말처럼 하는 경박 재자(經薄才子)를
가리켜서 약간 경멸의 뜻도 포함하여 
"그것은 도청도설(道聽途設)이다."라고 한다.
현대는 전후 좌우에 정보가 득실거리고 있다.
도청 도설(道聽途說)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내용은 옥석 혼효(玉石混淆),
즉 착한 것과 악한 것, 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한데
섞여 있어서 어느 것이 유용하고 옳은 것인지 선별도
쉽지가 않다. 이렇듯 많은 것들이 범람해 있지만
기초 지식이 있어야만 파고들어서 이해하고 활용 할 수
있는 것인데도 눈동냥이나 귀동냥의 지식을 제대로 음미도 
하지 않은 채 의기양양하게 과시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빈축을 사서 마땅하지 않을까?
도청 도설(道聽途說)

✯ 신입사(新入社), 또는 조사, 연구 회의 등에서의
인사나 훈시때에 "그 정보[設]는 옳은 것인가?
진위를 식별할 수 없는 동안은 함부로 인용하지 말고 그 말을
사려깊은 마음으로 자기로서도 충분히 해석한 연후에
지식으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함부로 도청 도설하여 경박 제자의 비난을 듣지 않도록
조심합시다."고 하는 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

도리(挑李)는 말하지 않아도 그 밑은 혜(蹊)를 이룬다.





✮ "복숭아와 오얏은 전혀 말을 않지만 그 꽃이나 열매를 찾아서
사람이 모이고 그 밑은 자연히 작은 길이 생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덕이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뜻의 이와 같은 구절이 『史記)』에 적혀 있다.
도리(挑李)는 말하지 않아도 그 밑은 혜(蹊)를 이룬다.

이광(李廣)은 적과 맞서서는 용감하고 부하에 대해서는 애정이
깊은 훌륭한 장군이었다고 사기의 작가 사마천이 칭송한 뒤, 그 전기를
싣고 끝으로 이 말이 속담 중에 있다고 인용했다.
논어의 "덕은 외롭지 않다.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과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리(挑李)는 말하지 않아도 그 밑은 혜(蹊)를 이룬다.

✰ 비지니스의 세계에서도 "덕"은 중요하다.
파렴치한 돈벌이,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같은 부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경영자나 회사의 인덕, 품격이 세상에 좋은 이미지를 주면 먼 앞날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회사나 지점의 품격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며 장사를 떠나서
문화 사업 등에 공헌하며 오늘날까지도 칭송을 듣는 선인도 있다.
도리(挑李)는 말하지 않아도 그 밑은 혜(蹊)를 이룬다.

적극적으로 선전해서 꽃이나 과실이 없어도 큰 얼굴을 하는 시대가
되고 있지만,세상은 잘 알고 있다.
겉만 치장한 상품의 매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덕(德)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 『논어』이인편(이인편(李仁篇) 중에서.
덕행이 있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고독하지 않다.
반드시 그 감화가 주변에 미치고 또는 사모하는 사람이 나온다.
덕(德)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을 뜻하는 구절이다.
현실의 세상은 이기적인 생각에 서서 모든 문제를 "자기의 이해"
라는 척도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사원은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하거나
남으로부터의 평가를 걱정하기가 쉽다.
덕(德)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예를 들어, 여자 사원의 차 시중만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을 시키면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의지로 
따끈한 차를 대접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차 시중을 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 잔의 차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부드러워지게 하는지 모른다.
성심껏 내놓은 차이면 "이 차를 끓여 준 사람은 누굴까?" 하고
뜻하지 않은 평가를 받게도 되는 것이다.
덕(德)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 사전에서 "덕(德)"을 찾아보면 「마음이 바르고 행실이 인도(人道)에 어긋남이
없는 일. 남을 마음속으로부터 따르게 하는 인격」으로 나와 있다.
"덕"이라는 글자에서 받는 의미는 폭이 넓고 표현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응보(應報)를 기대하지 않고 매일같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의 노력을
축적해 가는 일이 중요하다. 반드시 여러분의 행위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
평가해 주게 될 것이다.

대결하면 흑백을 알게 된다.





✮ 영국의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격언집
『폴로네즈』에서 "대결하면 흑백을 알게 된다.
다면 그것을 알아낼 안목이 있어야 하지만....."하고
인용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아무런 색다른 점도 없는 문구로서
쉽게 지나쳐 버리기 쉬운 듯한 말이지만,
자기의 일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연 평온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즉 언제 어느 때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냐 하는 것이다.
분쟁이 나면 쌍방이 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한다.

한 사람씩 말을 들어 보면 어느 쪽의 주장도
지극히 옳다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이란 것은 자신의
정당화를 꾀하려고 하는 법이다.
어떤 중소 기업의 경영자가 
"이러쿵저러쿵 소문이 나도는 사원은
실격이다. 다소 과장되거나 왜곡되어 있을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사실 무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률,특히 형법은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하는
"예방"이 기본적인 정신이다.
대결해서 백이고 싶으면 평상시 백의
생활 태도를 견지해야만 할 것이다.


✰ 어느 부과(部課)에도 평소에 작은 내분은 있다.
또 부하들 상호의 인간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게 보면 이 문구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유효일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부하에게 침투시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결을 바라지 않되, 그렇다고 피하지도 말하야 한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가 배우려는 자를 방해한다.





✮ 몽테뉴의 『수상록(隧想錄)』에 적혀 있다.
이 말은 가르치는 것, 가르침을 받는 것의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타인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려고 했을 때의 장면을 상기해보면
수긍할 수 있듯이, 우리는 배우려고 하는
그 사람이 너무나도 뛰어나게
훌륭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흉허물없이 아무것이나 질문할 수가 없다.

학교의 선생님이라면 가르칠 임무가 있는 것이니
오히려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런 것을 아직도 모르나?"하고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자기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질문함으로써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만다.

어머니가 "아빠에게 물어 보렴."하고 말해도
자식이 전혀 아버지에게 질문하러 오지 않는 것도,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에게 묘한 권위를
느끼고 머뭇거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준엄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르치는 자의
권위가 모처럼의 향학심을 
방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교원(敎員),그 밖의 지도자 세미나 등에서
인용할 수 있는 말이다.



당신이 헛되게 지낸 것은 과거의 시간 뿐이다.






✬ 이 구절 뒤에 "그것은 당신을 위해 남겨져 있다"는 말이 이어진다.
생명 보험(生命保險) 세일즈계에서 최대의
세일즈맨으로 꼽혔던 프랭크 베드거가 
후배에게 남긴 말이다.


그는 방문 시간의 낭비를 줄임으로써 업적을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각종의 판매 기록,행동 기록 예정표 등을 면밀히 정리,
작성해서 철저한 시간 관리를 실행했다.
그 때문에 토요일은 일을 쉬며 그러한 정리와
계획에 충당했고,그것을 그는 
"자기 자신을 정리하는 날" 이라고 불렀다.
쉬는 시간은 방문할 수 없으므로 쉬는 시간 만큼은
손해이지만, 그러나 그 몇 배나 되는 시간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일의 시간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남겨져 있다.
과거에 헛되이 시간을 보낸 것을 후회해도 도리가 없다.
그리고 물론 남겨진 시간이라는 것도
사람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는 남겨진 시간을 헛되게 보내느냐, 
유효하게 보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프랭크 베드거의 말이기 때문에
판매 관계자에게 적합한
말이지만, 세일즈맨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간을 쓰기에 따라한 청년이 거부가 되었다는
성공 사례로써 광범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소할 수 있다.


단호히 행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 『사기(史記)』에 나오는 진나라의 재상 조고(趙高)의 말이다.
조고라는 사람은 전임 재상이었던 이사(李斯)를
죽이고 후임으로 들어앉기도 하고 황제까지도 죽인
악인이지만,이 말은 무슨 일이든
뜻을 정하고 단행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오래도록 널리 전해져 왔다.

비슷한 말로서 『사기』에
"돌에 박힌 화살에 선례가 있다......"는
말이 있다. 전한의 이광(李廣)이란 무장이
숲속의 돌을 호랑이로 알고
활로 쏘았더니 그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말은 지금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하면 된다","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등의 말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장(長)으로서
명심해야 할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 새로 공장을 세워서 신제품을 기획해 성공시키고
싶은데 불안한 일도 많다.
그런 때 "단행이 있을 뿐" 이라고 외쳐보자.
제2차 대전 말기의 일본군처럼 비행기와
가솔린이 없는데도 죽창만으로 전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자료의 검토를 마치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
연후에 그래도 불안이 남아 있을 때에 쓰일 수 있는 말이다.


단단히 묶어서 빨리 찾으라.




✬ 서양의 속담
말끔히 정리해 놓으면, 물건이 없어졌다고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뜻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2막 장에
"꽉 죄면 확실하게 차지한다.
상인에게는 지금도 역시 의미 심장한 속담이다."
라는 대사가 있다.

서류나 자료 같은 것을 난잡하게 쌓아놓고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시키는 사람이 있다.
보통때는 그것으로 문제 없이 일을 하고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본인의 기억과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의 방법에만 기대고 있는 것이 된다.
위험한 일이다.
남은 알 수 없다.

본인이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리,정돈하는 것을 소심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거나 혹은 호쾌한 성격으로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격은 요즘은 환영받지 못한다.
일단 유사시에 본인이 허둥대는 것이라면
몰라도, 조직적인 일에 지장이 있다면
그야말로 개인만의 문제일 수는 없게 된다.



✰ 정리, 정돈이 서투른 사원에게는 좀 심하게
몇 번이라도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
"어지럽히는 것은 군이 출세해서 유능한 비서를
고용한 뒤에 하게."라고.
어떤 기업에서도 정보가 개인에게 귀속해서
조직에 정착하지 않는다는 번민을 가지고 있다.
어차피 그 기업의 관리 내지 조직 체계의
문제인 것이지만, 우선 신변에서부터 
직접 실천해 보아야 한다.





"다행 찾기"를 합시다





✮ 미국의 여류 소설가 에레나 포터 여사의
『폴리아나 이야기』의 주인공인 폴리아나의
입버릇이다.

소녀 폴리아나는 어려서 부모를 사별하고 가정 교육이
엄한 큰어머니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복이 없는 소녀였지만, 밝은 천성과 명랑한 언동으로 주위의
완고한 어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사람들을
어느 틈에 행복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전에 텔레비전의
만화 영화로서 상영되어 어린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높은 시청율을 올렸다.

폴리아나처럼 무엇이든지 좋은 뜻으로 해석하고,
원인은 무엇이든 간에 그 결과를 모두 자기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발견이나 놀라움으로서 포착하여
"아, 다행이다."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언제까지나
깊은 슬픔이나 고뇌에 빠지는 일도 없고 원망 같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되어 주위 사람들과 안온하고 따뜻한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교훈을 주는 작품이다.


✰ TQC(종합적 품질 관리)의 활동에서는 직장의 문제점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흠찾기를 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때로는 "다행 찾기"를 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싶다.

다기 망양(多岐亡羊)






✮ 중국의 전국 시대 때 양자(楊子)라는 학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양자의 제자들까지 가세하고 많은 사람이 뒤쫓는데도
좀처럼 붙잡히지 않고 소란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양자가 묻자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서
좌우로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데다 갈림길이 그 끝이 또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서 끝내 잃고 말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양자는 커다란 근심에 싸이고 말았다.

제자들은 고민하는 스승의 모습이 걱정되어 모여 앉아 생각한
끝에, " 큰 길은 갈림길이 많아서 달아난 양을 좀처럼 붙잡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문의 길로 여러 가지의 학설로 나뉘어져 있어서
본래의 참뜻에 도달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스승의 고민임을 알게 되었다.
『열자(列子)』에 기재된, 양자와 얽힌 일화이다.



✯ 연수, 학습 등의 자리에서는 
"연구,면학의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길을 잃어 제 길을 찾지 못하는 '다기 망양'이 되지 않아야한다."고
인용해 주기 바란다.
또는 임원 등의 취임 인사 때에 "덕택에 이 길을
⚪⚪년,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만,
'다기 망양'이라 아직도 이 길에서 제길을 
찾아내기까지에는 요원한 것 같으니,
부디 잘 지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하고 겸손한 말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에는 아무런 속임수도 없다.

성공에는 아무런 속임수도 없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전력을 다해 왔을 뿐이다. ✮ 데일 카네기의 말. 세상은 운(運),둔(鈍),근(根)이라는 말을 한다. 출세하거나 부자가 되려고 하자면  이 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인데...